검색결과
  • (90)평강·인촌 채씨

    채씨는 인구순위 51번째로 남한에만 10여만명을 헤아린다. 고려중엽의 채송년을 시조로 하는평강,채선무를 시조로 하는 인천의 두 본이 있다.그러나 모두 한 혈통으로 여기고있다. 채씨

    중앙일보

    1983.12.10 00:00

  • 학성 이씨(글 이춘성 기자 사진 김택현 기자)

    학성은 울산의 옛이름이다. 물좋고 산좋아 군학의 서식처였던데서 이름을 얻었으리라. 이곳을 근거지로 가문을 일으킨 학성이씨는 전국에 l만5천여명, 희성에 든다. 시조는 학파이예 (1

    중앙일보

    1983.10.22 00:00

  • (81)장흥 위씨

    위씨는 삼한말기에 중국 당나라에서 귀화해온 단본씨족으로 전한다. 시조는 당나라의 정관12년(638년)에 신라 선덕여왕의 도예지사초청에 따라 태종이 보내준 이른바「팔학사」(위·방·홍

    중앙일보

    1983.10.01 00:00

  • (78)황씨

    우리나라의 황씨는 모두 한할아버지 자손으로 알려져있다. 평해·장수·창원의 3대본외에 상주·우주(전주의??현)·회덕·덕산등 10여본이 있으나 모두 한할아버지에서 갈라진 분적종이란 것

    중앙일보

    1983.08.27 00:00

  • 성씨의 고향나주정씨

    『동방 세나라(한·중·일)에 글자있은뒤 널리 보고 깊게알기(박관강기)이보다 더할이가 없다』고까지 추앙받는 일세의 석학다산 정약용-. 그는 나주정씨 가문이 우리역사에 밝게 켠 빚난

    중앙일보

    1983.03.26 00:00

  • 동래정씨

    「무편무당」-. 언제나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중용지도룰 지켜 이웃과 화합하고 적을 삼지않는 온화한 기품이 동래정문의 가풍으로 이어 내린다. 학과도 같은 고고한 기품은 이조 선단조이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8.07 00:00

  • (26) 밀양박씨

    박씨는 김씨·이씨와 함께 우리나라 3대성의 하나로 인구는 약4백만명. 이중 밀양 (밀역) 박씨가 차지하는 비율은 70∼80%로 박씨의 주류를 형성한다. 「밀박」은 박씨의 주축을 이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7.31 00:00

  • (13)고령 박씨

    박씨는 김·이에 이은 우리 나라 3번째 태생. 남한에만 약4백만명, 전체인구의 10%를 웃도는 숫자다. 그러나 그중 고령 박씨는 불과 3만여명으로 「대성속의 희성」인 셈. 신라왕손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4.10 00:00

  • (12)신창맹씨(제자 : 초정 권창윤)

    맹씨 하면 언뜻 작가 오영진의 희곡 『맹진사 댁 경사』에 나오는 주인공 맹 진사를 연상하게 된다. 작품 속의 맹 진사는 재물에 욕심 많고 권력에 아부하는 희극적 인물이지만 현실의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4.03 00:00

  •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(3372)|제76화 화맥인맥 월전 장우성(91)|추사 김정희

    추사(김정희)는 1786년6월3일 충남예산군 신엄면 룡궁리에서 태어났다. 아버지는 순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김노경이고 어머니는 유씨다. 어머니 유씨가 추사를 잉태, 24개월만에 출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3.25 00:00

  • 사촌형제 세 집이 담사이에 두고 나란히

    3백년 넘어 한 집안이 한 땅을 지키며 지금도 도시 중심부에서 10촌이 넘는 일가친척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이 있다. 전주시 교동2가 80번지를 중심한 일대는 일제 때부터 전주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2.22 00:00

  • 연주 현씨

    『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….』 소월의 명시 「진달래꽃」으로 널리 알려진 평안북도 영변의 옛 이름은 연주. 연주 현씨는 바로 이곳 영변에서 8백여 년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2.20 00:00

  • 풍양 조씨

    예부터 도덕과 학문·벼슬은 명분이 갖추어야 할 기본요건이라 했다. 여기에 권세까지 곁들였을 매 명문벌족이라 칭한다. 풍양 조씨는 안간 김씨 일문과 한치의 양보 없는 세도정치의 쌍벽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1.30 00:00

  • (3)-영천 황보씨

    전국에 1만2천여명. 2백50여 성씨 가운데 인구순으로 1백7번째. 3천여명을 만나면 그 중에 한사람 낄까 말까다. 영천 황보씨를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.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1.23 00:00

  • 영천 집성촌 영일군 성동리

    경북 영일군 구룡포읍 성동리-. 영천 황보씨가「출 한양」이후 4백여년, 맺힌 한속에 조상의 얼을 지키며 숨어 살아온「바빌론의 강변」같은 마을이다.『아마 더 갈 데가 있었더라면 더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1.23 00:00

  • (10)|기로세련계회도

    미술 2천년 전의 회화 부문은 도자기나 조각·공예품에 비하여 그리 괄목한 것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. 숨어 있던 새로운 작품의 소개가 없다. 비록 원화를 볼 기화가 없었더라도 도록이

    중앙일보

    1973.05.01 00:00

  • (252)명창주변(3)|박헌봉(제자는 필자)

    대원군은 집권하기 전까지의 불우했던 사생활 때문인지 권좌에 오른 후에도 광대나 재인 기생들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이해심이 깊었다. 영조-정조시대이후 노래하는 광대에 대한 일반의 관심

    중앙일보

    1971.09.08 00:00

  • (3)정조의 효심과 애화 담긴 용양봉저정

    용이 뛰고 봉이 솟아오른다는 뜻의 용양봉저정은 효자 임금 정조 (이조 22대 왕)의 뛰어난 효심과 눈물겨운 애화가 구석구석 서려 있다. 줄여서 용봉정으로 불리는 이 정자는 제1한강

    중앙일보

    1970.03.18 00:00

  • (23)이조말엽∼중엽 인물중심으로 유홍열|국제무역의 선구자 가포 임상옥

    임상옥은 북경에 왕래하던 우리 사신들을 따라 그곳에 거듭 가서 영약이라고 불리던 우리 인삼을 많이 팔아 큰 부자가 되고 그 공로로 벼슬까지 지내게 된 인삼무역의 거상이었다. 그는

    중앙일보

    1966.08.13 00:00

  • 농정학의 대가 풍석 서유구

    서유구(구)는 노론의 양반집 자손으로서 학문을 사랑하던 정조때부터 벼슬을 살기 시작했다. 순조를 거쳐 현종조에 죽을 때까지 40여년 동안 안팎의 여러 벼슬을 사는 사이에「고구마」의

    중앙일보

    1966.08.06 00:00

  • 이조중엽∼말엽 인물중심(17)-유홍열|북학파의 영수 연암 박지원

    ◇쟁쟁한 양반 후손 박지원은 영조의 사위이던 금성위 박명원의 8촌 아우라는 쟁쟁한 양반집의 자제로서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탓으로 늦게야 글을 배우되 벼슬을 얻으려는 데는 뜻을 두지

    중앙일보

    1966.06.25 00:00

  • (12)이조 중섭∼말섭 인물중심|유홍렬

    이긍익(肯翊)은 이씨 왕가의 후손으로서 그 아버지가 당파싸움의 여죄로 몰러 귀양살이를 하게됨으로써 벼슬 질이 막히게되자 70평생에 책을 벗으로 삼고, 약 4백 종의 행적에서 이조

    중앙일보

    1966.05.21 00:00

  • (5)|실학의 비조-반계 유형원|유홍렬

    유형원은 이조 세종 때의 유명한 청백사이던 문화인 좌의정 유관의 10대 후손으로서 1622연1월21일에 서울서부 정릉동 (정동)에 있던 외삼촌 참의 이원진 댁에서 태어나 자를 덕

    중앙일보

    1966.04.02 00:00

  • (1)우리와 민속문화를 찾아서

    내 것, 내 민족의 것에 대한 관심이 한창 높아가고 있다. 민족주체를 찾으려는 움직임이다.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끊어진 왕조에서 혹은 고매한 유학자의 가르침 속에서만 그것을 찾으

    중앙일보

    1965.09.23 00:00